안녕하세요. 
따뜻한 봄날을 잘 즐기고 계신가요?

약 3년 전에 <미란다처럼>이라는 책을 혼자 번역해 출판하겠다고 텀블벅을 올리고 미드나잇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그때 덧글로 Margo 님께서 티나 페이, 민디 캘링도 책이 있다고 알려주셨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두 사람의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미란다 책만 계약하고 출판한다고 나대던 시기였거든요. 

사실 티나 페이 같은 경우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 각본을 쓰는 등 오래전부터 독보적인 포지션을 잡고 활동해왔고 유일한 집필서인 <보시팬츠>가 미국에서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다기에 기존 출판사에서 출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경쟁도 없이 판권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인지도가 없다 보니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텀블벅 시작하고 나름대로 여기저기 알린다고 하는데도 관심을 끄는 것이 쉽지 않네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미국의 문화적 배경부터 소개해야 하니... 그래서 아무래도 영화,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여있는 곳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드라마나 보면서 소소하게 덕질이나 하면 될 것을 어쩌다 직접 출판을 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겨서는 생고생을 하고 있네요.ㅎㅎ

그냥 홍보 글만 띡 올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두 사람을 알게 된 계기를 몇 가지 나눠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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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티나 페이를 알게 된 것은 <30락>이라는 시트콤을 통해서였습니다. <30락>은 NBC 방송국에서 자사의 라이브 스케치 쇼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를 모델로 해서 만든 시트콤이죠. ('30 Rock'은 NBC 본사가 위치한 30 Rockefeller 빌딩의 줄임말입니다.) <SNL> 최초의 여성 수석 작가인 티나 페이가 <SNL>에서의 자신의 포지션과 거의 흡사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보수당을 지지하는 방송국 사장 역에 알렉 볼드윈이, 막나가는 간판 스타 역할을 흑인인 트레이시 모건이 맡아서 세 가지 축이 얽히고 설키면서 진행되는 쇼인데요. 돈에 죽고 사는 방송국 경영진을 까는 내용도 나오는데도 NBC에서 이런 쇼를 방영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은 역시 모두까기를 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미국 방송 문화 등을 모르면 진입장벽이 좀 높은 시트콤이라 저도 처음에는 몇 번 진입실패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위키에는 이렇게 나와 있군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역사, 네오콘, 이라크 전쟁, 기업 인수 합병 등의 정치와 NBC 중심의 프로그램 패러디 및 방송 제작 과정에서의 어른의 사정, 유명인들의 사생활 등 미국 방송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전제하는 코드가 깔려있어 이를 모르면 드라마의 요소를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호불호나 취향이 어느 정도 갈리는 드라마중에 하나다." - 나무위키

티나 페이를 보면서 신기했던 게 사회적으로 약점이라고 여기는 너드적인 면, 덜 떨어져보이는 면을 그대로 내보이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강력한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인지였어요. 책을 읽어보니 오래 전부터 자신이 특별하다고 착각해왔다고 고백하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쌓아온 즉흥연기 경력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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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데이비트 레터맨 쇼인 <오늘의 게스트> 티나 페이 편을 보는데, (레터맨은 1980년대 부터 NBC CBS에서 활동한 미국을 대표하는 심야 토크쇼 호스트로 굉장한 경력과 명성을 가진 진행자죠.) 중간(20분 정도)에 레터맨이 그동안 텔레비전 쇼에 여성 작가들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늘 제게 물었어요. 어딘가에서 어떤 주제로 인터뷰를 하더라도 그들이 제게 물었죠. '왜 당신은 여성 작가를 고용하지 않죠?'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몰라요'였죠. 왜 여성 작가가 없는지 저도 몰랐어요. 모르겠어요, 여성 작가를 배제하는 정책 같은 건 없거든요. 전 늘 생각했죠. '내가 여성이었다면 이런 하찮고 시시한 구경거리에 참여하고 싶을까, 모르겠네. 우리 쇼는 12시 30분에 시작하니까.'"

여기서 티나 페이가 레터맨의 이 문장이 끝나자 마자 "Yeah, We Do wanna write on that.(물론, 우리는 그런 쇼를 쓰고 싶어요.)"라고 조용히,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하는데, 글로 써놓고 보면 뻔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다른 부연설명 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뱉는 모습이 참 많은 영감을 주더라구요. 뭐, '여자가 그런 걸 왜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받아친다든지, '그런 걸 안 좋아하는 여자도 있지만 저는 하고 싶어요'라든지 에둘러 표현하는 게 아니라 딱 잘라 말하는 그 태도가 좋았어요.

책 <보시팬츠>는 아주 많이 팔리긴 했지만 평이 많이 갈리는 것 같아요. 티나 페이 성격이 워낙 진지한 분위기나 힘 주는 걸 싫어하는지 표지도 우스꽝스럽게, 책의 구성도 중구난방이거든요. 티나 페이 그대로를 보기에는 제격이지만 무언가 체계적이고 있어 보이는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줄 수도 있죠. 개인적으로는 단점이 있더라도 장점이 강력하다면 만족이라 좋았지만요. ㅎㅎ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원서 판권 계약 과정이 순서대로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민디 캘링의 책도 함께 출간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민디 캘링을 처음 본 것은 역시 시트콤 <민디 프로젝트>를 통해서였습니다. 뭔가 내용 자체가 주인공 민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살펴봤더니 역시나 직접 기획한 드라마였더라구요.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고, 게다가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핸디캡이 있는데도 벌써 자기 이름을 걸고 제작에 참여하다니 이때부터 민디 캘링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죠. 보통 미국의 TV쇼에서 이민자 자녀가 분하는 캐릭터로 예상하기 힘든 산부인과 의사로 등장하는데, 민디 캘링의 어머니가 바로 산부인과 의사라고 하네요. 책을 보면 어머니가 인도에서 의사를 하다가 왔는데도 미국에 와서 다시 자격 과정을 밟느라 민디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항상 바빴다는 회상이 나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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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디 프로젝트>를 보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쇼를 만드니 참 신선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어느 정도는 기존 드라마 작법을 따르긴 하지만 여성 주인공이 통통한 인도계 여성으로 바뀐 것뿐인데 같은 로맨틱한 상황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하게 하더라구요. 특히 민디가 정의롭고 올바른 캐릭터이기보다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사치스럽고 뻔뻔하게 나오는데 가끔 자신의 인종적인 정체성을 자기 편할 때 써먹거든요. "As woman of color..."(유색인종으로서 이건 내가 해야 해) 뭐 이런 식을... 그게 뻔뻔스럽고 웃기면서도 PC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시트콤이 무슨 정답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웃음 사이, 사이에 그런 지점들이 발견되는 게 시트콤의 매력 같습니다. 

이번에 번역한 책은 민디 캘링의 첫 번째 책이라서 이민자 자녀로 자랐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처음 뉴욕에 와서 방송 일을 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때의 이야기와 모큐멘터리 시트콤 <오피스>에 작가이자 배우로 참여할 때의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재밌는 사실은 <오션스 8>에 출연하기 전에 쓴 책인데 '리메이크하고 싶은 시리즈'에 <오션스 11>이 있더라구요. 번역하면서 혼자 소소한 반가움을 느끼면서 영화를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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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서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인데(아무도 관심이 없... ㅠㅠ)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아 보았어요. 기대가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텀블벅도 살펴봐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전자책 옵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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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그때 댓글 달아주셨던 Margo 님이 봐주신다면 엄청 반가울 것 같아요. ㅎㅎ


* 혹시 글에 문제가 있다면 빛삭할 수 있으니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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